- 색을 더하지 않고 화이트와 그레이 톤으로 비웠더니, 40평대가 비로소 40평대처럼 넓어 보였습니다.
- 면발광 거실 천장, 그레이지 무손잡이 주방, 그레이 스톤 욕실, 브론즈 3연동 중문으로 정리했습니다.
- 구축 전체 시공의 격은 벽지 뒤 단열·방수·배관처럼 보이지 않는 공정에서 갈립니다.
거실 한가운데에 서서 천장을 올려다봤습니다.
성북구 돈암동, 한신한진 40평대였는데요.
빈 거실인데도 넓다는 말이 먼저 나오더라고요. 흰 벽, 흰 천장, 그리고 발코니 쪽 큰 창으로 들어오는 빛.
색이 하나도 없는데, 비어 보이지 않았습니다.
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는,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.
거실 천장은 단을 준 구형 천장에 크라운 몰딩, 형광등이 달려 있었고요. 벽은 베이지 무늬 벽지였습니다.
주방은 손잡이 달린 우드그레인 상하부장에, 방에는 무늬 띠 들어간 구형 미닫이 붙박이장과 원목 마루가 있었어요.
여기서부터, 색을 하나씩 빼기 시작했습니다.
이 집은 색을 더하면 안 되는 집이었습니다
40평대는, 면이 많습니다.
벽이 넓고 천장이 넓고 바닥이 넓어요. 여기에 색을 하나씩 얹기 시작하면, 넓은 집이 오히려 답답해집니다.
그래서 이 집은 처음부터 방향을 거꾸로 잡았습니다. 더하지 말고, 빼자.
바닥은 밝은 그레이 톤의 스톤 마루 한 가지로 끝까지 깔았고요. 벽과 천장은 흰색으로 비웠습니다.
거실 천장 가운데에는 넓은 면발광 조명을 길게 앉히고, 둘레에는 매입등만 점점이 박았습니다. 화려한 등을 달지 않았어요.
빛이 천장 면 전체에서 고르게 떨어지니까, 낮에도 밤에도 거실이 균일하게 환합니다.
이 집의 핵심은, 무엇을 넣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안 넣느냐였습니다.
주방만, 딱 한 톤 따뜻하게
집 전체를 흰색과 회색으로 비웠는데, 한 곳만 온도를 살짝 올렸습니다.
주방인데요.
상·하부장과 아일랜드를 손잡이 없는 그레이지(회색빛 도는 베이지) 톤으로 짰습니다. 흰색보다 반 톤 따뜻한 색이에요.
상판은 흰색. 그 흰 상판이 그레이지 장과 만나면서, 차갑지 않게 정리됩니다.
손잡이를 일부러 뺐습니다. 면이 매끈하게 떨어지면, 주방이 가구가 아니라 벽처럼 보이거든요.
거실에서 주방으로 이어지는 천장에 디스크형 펜던트 하나만 내렸습니다. 흰 면에 동그란 갓 하나. 그게 이 긴 공간의 유일한 포인트입니다.
여기 식탁이 놓이면, 저 조명 아래가 이 집에서 가장 따뜻한 자리가 되겠더라고요.
욕실은 돌결 타일로 차분하게
욕실은 그레이 스톤 무늬의 대형 타일로 벽과 바닥을 둘렀습니다.
벽에 단 거울장 아래로 간접조명을 한 줄 넣었습니다. 거울 밑에서 빛이 새어 나오면, 타일 면이 떠 보이면서 욕실이 한결 차분해집니다.
세면대는 벽에 붙이는 벽걸이형으로, 아래를 비웠습니다. 바닥이 보이면 좁은 욕실도 덜 답답하거든요.
욕조 벽에는 타일을 파서 만든 매입 선반을 하나 뒀습니다. 선반을 벽 밖으로 튀어나오게 달지 않고, 안으로 넣었어요. 동선에 걸리는 게 하나라도 줄어듭니다.
방은, 벽 하나를 통째로 수납으로
침실은 흰색 하나로 끝냈습니다.
대신 한쪽 벽 전체를 손잡이 없는 흰색 붙박이장으로 채웠습니다. 천장 가까이까지 올려서, 위 공간도 버리지 않았고요.
장과 벽이 같은 흰색이라, 수납장이 한 벽처럼 보입니다. 방은 넓어 보이는데 수납은 벽 한 면만큼 늘어난 셈이죠.
40평대라고 수납이 저절로 넉넉한 건 아닙니다. 넓을수록 짐도 같이 늘거든요. 그래서 방마다 벽 한 면은 수납으로 잡았습니다.
현관과 집을, 유리 한 장으로 나눴습니다
현관에서 거실로 들어오는 자리에는 3연동 중문을 달았습니다.
브론즈 톤 얇은 프레임에 유리를 끼운 중문인데요. 막힌 문이 아니라 유리라서, 현관에 서도 집 안이 환히 비칩니다. 빛은 통과시키고, 바깥 공기와 냄새는 막고.
흰 벽 사이에 이 브론즈 프레임 하나가 들어가니, 밋밋할 수 있는 현관에 선이 하나 생깁니다.
진짜는, 벽 뒤에 있습니다
여기까지는 눈에 보이는 이야기입니다.
구축 아파트 전체 리모델링에서 정작 돈이 갈리는 곳은, 사진에 잘 안 나옵니다.
이 집은 구축이라, 외벽에 면한 라인의 단열을 다시 잡는 게 중요한 현장이었습니다. 겉으로 보이는 벽지 안쪽에서 결로와 추위가 갈리거든요.
그래서 전체 시공은, 마감을 올리기 전이 더 중요합니다. 욕실 방수, 단열, 오래된 배관 — 보이지 않는 이 공정에서 집의 수명이 갈리거든요.
다 끝나고 나면 이런 건 하나도 안 보입니다. 벽지 한 장에 덮여서요.
전체 시공의 격은, 마감이 아니라 그 벽지 뒤에서 갈립니다.
이 집에서 끝까지 고민했던 것
사실 40평대를 흰색과 회색만으로 비우는 건, 쉬운 결정은 아닙니다.
색이 없으면 자칫 모델하우스처럼 차갑게 식어 보입니다. 그렇다고 포인트 벽이나 짙은 색 가구를 하나 들이면, 그 순간 넓던 면이 잘려 나가고요. 더할 것이냐 뺄 것이냐, 그 경계에서 가장 오래 망설였습니다.
결국 색을 더 넣는 대신, 온도를 옮기는 쪽을 택했습니다. 집 전체는 끝까지 비우되 주방 하나만 반 톤 따뜻하게. 차가워질 위험은 그 그레이지 한 톤으로 받아내고, 넓은 면은 그대로 살렸습니다.
무엇을 채우느냐가 아니라, 어디까지 비우고 그 비움을 어디서 멈출 것이냐. 그 선을 잡는 일이 이 집에서 가장 오래 붙들었던 고민이었습니다.
- Q. 돈암동 같은 구축 40평대도 전체 리모델링이 가능한가요?
- 가능합니다. 오히려 구축일수록 단열·배관처럼 기초부터 다시 잡을 게 많아, 부분 수리보다 전체 시공이 결과가 깔끔합니다. 이 돈암동 한신한진 현장도 철거부터 마감까지 통으로 진행했습니다.
- Q. 색을 안 쓰면 밋밋하지 않나요?
- 넓은 40평대에서는 오히려 반대입니다. 색을 빼면 면이 정리되면서 공간 자체가 넓어 보입니다. 이 집은 주방 한 곳만 반 톤 따뜻하게 줘서 포인트를 잡았습니다.
- Q. 구축에서 단열은 어디까지 손보나요?
- 외벽에 면한 라인(외벽 쪽 방·발코니·주방)을 중심으로 단열을 다시 잡습니다. 겉으로 보이는 벽지 안쪽에서 결로와 추위가 갈리기 때문에, 부분 수리가 아니라 통으로 진행하면 보통 8주에서 10주가 걸립니다.
넓은 집을 넓게 쓰는 방법이, 꼭 무언가를 채우는 건 아니더라고요.
이 돈암동 집은, 빼면서 완성됐습니다.
지금 사시는 40평대가 넓은데도 어딘가 답답하다면, 새 가구를 들이기 전에 색부터 한번 덜어보셔도 좋습니다. 벽 하나, 톤 하나만 정리해도 집은 꽤 달라지거든요.
급히 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. 다른 현장 사진들 더 보시고, '이 결이다' 싶으실 때 한번 이야기 나눠도 늦지 않습니다.
급히 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. 다른 현장 사진들 더 보시고, '이 결이다' 싶으실 때 한번 이야기 나눠도 늦지 않습니다.
집 사진 몇 장만 보내주셔도 좋습니다. 어디부터 손대면 좋을지,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꾸면 좋을지 먼저 말씀드릴게요.